FIFA 회장 선거에서 물러나며

지난 1년 반 동안 국제축구연맹(FIFA) 윤리위의 이른바 ‘조사’를 받으면서 많이 시달렸다. 차기 FIFA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저에 대한 윤리위의 시비 걸기는 더 심해졌다. 금년 7월 하순, 주요 언론들이 저의 출마 가능성을 보도한 직후 윤리위의 조사국은 검찰 기소에 해당하는 심판국 회부를 결정했다. 15년 제재 요청과 함께였다. 얼마 후 윤리위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4년 제재 요청이 더해졌다.

이제 윤리위의 부당한 조치로 인해 후보 등록 마감일일 10월26일을 넘기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차기 회장 선거 출마를 철회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번 회장 선거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할 일은 있을 것 같다. 후보가 아닌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FIFA에 대해 고언을 더 많이 할 것이다.

FIFA 윤리위는 서울시장 선거로 한창 바쁘던 지난 해 3월 경부터 조사를 하겠다면서 끊임없이 괴롭혔다. 선거 와중인 5월 서면조사에 대해 일일이 답변을 하면서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 이후 가르시아 윤리위원장이 작성한 종합 보고서는 “한국의 유치과정은 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FIFA 윤리위는 금년 1월20일 느닷없이 공식 조사를 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지난해 12월 영국의 톰슨 집행위원이 저와 투표담합(vote trading)을 했다고 주장하자 결정적 약점을 찾아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윤리위는 가르시아 위원장과 톰슨의 대화록을 보내면서 내게 “깜짝 놀랐느냐?”고 물었다. 톰슨은 2022월드컵 개최지 결정 투표일 하루 전인 2010년 12월1일 영국 윌리엄 왕자의 요청으로 왕자의 스위트 룸에서 캐머런 영국 총리, 톰슨, 그리고 우리 측에서는 저와 이홍구 전 총리가 참석했던 모임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톰슨은 윌리엄 왕자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지적하고 만약 이 자리에서 투표담합이 이루어졌다면 윌리엄 왕자와 캐머런 총리도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불법 행위를 은밀하게 논의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박하자 윤리위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취하했다.

윤리위가 또 문제 삼았던 부분은 한국 유치위가 발표했던 국제축구기금(Global Football Fund : GFF)에 관해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었다. 이것이 이익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기본적으로 집행위원들은 자기 나라의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2010년 11월 당시 발케 사무총장은 저와 한승주 당시 한국유치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 “이 문제는 종결됐다”고 밝혔었다. 게다가 이번 조사의 근거가 된 윤리위 규정은 2012년 개정판에 처음 등장했고 2010년에는 규정 자체가 없었다. 이러한 반박 때문인지 윤리위는 지난 10월8일 저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이 항목은 적용하지 않았다.

제가 8월17일 차기 회장 출마선언을 하기 직전인 7월초부터 캐나다의 밴쿠버,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FIFA내의 친구들은 윤리위가 저의 출마를 막을 것이라는 귀띔을 해주었다. 출마선언 직후 일부 언론에서 윤리위가 저를 제재할 것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윤리위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언론에 보도됐다. 아이티 파키스탄 같은 재난을 당한 나라에 기부했던 구호성금마저 조사대상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윤리위 내부의 정보 유출자를 찾아달라고 FIFA 감찰위원회(Disciplinary Committee)에 요청했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또 아시아 축구연맹(AFC)이 플라티니지지 서명 양식을 회원국에게 돌리고 이를 FIFA에 제출하도록 권유한 불법행위가 드러나 이를 FIFA 선관위에 고발했으나 선관위 역시 증거가 없다면서 이를 바로 기각했다.

이러한 윤리위의 비윤리적이고 불공정한 태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번에는 윤리위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기존 15년 제제 요청에 4년을 더 보탰다.

결국 지난 10월8일 윤리위는 당초 문제 삼았던 ‘투표담합’과 GFF 편지 관련 항목은 빼놓은 채 ‘조사비협조’,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6년 제재를 가한 것이다.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재판장이 되어서 심판을 했다.

FIFA 윤리위가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다. 뉴욕타임즈는 “FIFA와 ‘윤리’라는 말은 모순”이라고 했는데 그런 FIFA의 윤리위에 명예가 있다는 것 또한 모순이다. 명예훼손은 FIFA가 아니라 제가 당한 것이다. FIFA가 언론에 정보를 흘려가면서 저를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채색하는 동안 저는 벌거벗겨진 채 송곳으로 찔리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FIFA 회장 선거를 앞두고 저를 사람들 앞에 노출시키면서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매도하는 극장 효과(Theatrical Effect)를 낸 것이다.

마치 큰 비리라도 있는 것처럼 문제를 삼기 시작했던 FIFA 윤리위는 조사 근거가 무너지자 조사 과정상의 다른 사소한 것들을 시비 걸어 터무니없는 제재를 가했다.

이제 회장 선거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아직 할 일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축구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FIFA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싸움에 나설 것이다.

그동안 FIFA의 협박 때문에 공개적으로는 지지를 표명하지는 못했지만 사적으로 만날 때마다 제게 성원을 보내면서 격려해주었던 전세계 축구계의 동료들, 언론인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계속 관심 갖고 지켜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

 

FIFA가 아니라 축구를 살려야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차기 회장 선거는 벌써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FIFA의 변화를 끌어내야할 회장 선거의 의미가 퇴색하면서 FIFA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98년, FIFA는 24년 만에 회장 선거를 했었다. 이번에도 실질적으로 거의 20년 만에 회장 선거를 하다 보니 FIFA라는 조직은 선거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잊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8년 회장 선거에서는 온갖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주장도 많이 제기되었다.

개방과 개혁 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FIFA는 여전히 비밀주의와 부패의 음습한 그늘에 놓여있다. 민주주의의 중심 유럽에 있는 FIFA가 이런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벌인다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이런 상태라면 FIFA는 내년 회장 선거를 치르더라도 진정한 변화를 이뤄내기 어렵다. 회장을 바꾸고 규정 몇 개 바꾼다고 해서 부패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패의 모순만 더 쌓여갈 뿐이다. 차기 회장 선거가 수많은 축구팬들을 더욱 실망시키는 진짜 위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FIFA의 틀 안에서 FIFA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저에 대한 FIFA 윤리위의 부당한 제재는 FIFA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별로 개의치 않을 생각이다. FIFA 회장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 봉사의 자리라고 평소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봉사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FIFA라는 위선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FIFA의 문제점에 대해 정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FIFA를 진정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과거 비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단죄가 이루어져야 한다. 블래터 회장에 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한 이유다. 2006년 비자-마스터카드 후원사 선정 관련 소송은 FIFA가 마스터카드에 9천만 달러를 지불함으로써 종결되었지만 이 사건에 대한 블래터 회장의 책임은 남아 있다. 9천만 달러는 FIFA가 아니라 블래터 회장과 발케 당시 마케팅 국장이 내야 한다. 소멸 시효 여부를 검토해서 이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집행위원회의 구체적 승인 없이 지급되었던 블래터 회장에 대한 보수도 소송 대상이다.

FIFA라는 조직이 아니라, 축구라는 ‘희망과 영감’의 원천을 되살리기 위해 전세계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싶다.